럭셔리 SUV의 풍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동화는 시대는 급행으로 다가오고, 내연기관은 점점 ‘과거’로 밀려난다. 그럼에도 X7 M60i를 몰았던 지난주는 오히려 ‘클래식한 플래그십의 품격’을 만나 반가운 시간이었다.
주차장에서 처음 마주한 X7 M60i는 존재감,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전장은 5.1미터, 전폭은 2미터에 달한다. 키드니 그릴은 BMW 특유의 상징이지만 더 넓고 두터워졌다. 얇아진 헤드램프는 강렬함을 덧씌운다. M Sport Pro 패키지 덕분에 블랙 하이글로스 디테일이 스포티함을 더한다. 거대하지만 세련된, ‘덩치’와 ‘디자인’의 균형이 절묘하다.
도어를 열면 이미 7시리즈에서 익숙해진 BMW 최신 인테리어가 맞이한다.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운전석을 감싸고 선명한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괜찮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기어 셀렉터는 크리스털 마감으로 손끝 감각까지 고급스럽다. 대형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는 개방감을 극대화한다. 단순히 넓은 실내가 아닌, 고급스러운 공간이란 이런 것.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를 하나로 묶는다. 터치 반응은 빠르고 직관적이다. BMW OS 8.5 기반의 인터페이스는 스마트폰처럼 빠르고 쉽게 다룰 수 있다. 제스처 컨트롤이나 음성 명령도 꽤 정교하다.
2열은 단연 백미다. 독립식 캡틴 시트는 안락함을 넘어 ‘환대’에 가깝다. 전동 조절, 열선과 통풍, 팔걸이까지 갖춘 이 좌석은 장거리 이동 시 피로를 줄여줄 수 있다. 물론 벤틀리의 퍼스트 클래스급 시트와 비교할 건 아니지만, 의전이 아닌 가족 여행이라는 맥락에서는 이만한 대접이 없다. 가격대(1억8000만원대부터 시작)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땡큐’다.
물론 2열에서도 열선/통풍 시트, 마사지 기능 등 다채로운 설정이 가능하다. 클라이밋 제어와 앰비언트 라이트, 리어 커튼까지 고급차에서 기대할 수 있는 기능은 대부분 기본이다.
3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는 딱 여유로운 정도의 공간이지만, 마감은 결코 ‘보조석’ 느낌이 아니다. 천장과 옆면의 소재, 송풍구 배치까지 1·2열과 동일한 고급감을 유지한다. 다만 적재 공간에서 타협은 있다. 3열을 펼치면 트렁크 공간은 제한적. 가족이 다섯 명 이상이고 여행 짐이 많다면 3열은 어려운 문제다. 확실히 미니밴에는 미치지 못하는 요소다.
X7은 덩치와 달리 도심에서 부담스럽지 않다. 후륜 조향이 회전 반경을 줄여주며, 좁은 골목길이나 주차장에서 ‘거대함’이 크게 걸리지 않는다. 전자식 파킹 어시스트는 주차를 스스로 완벽히 마무리하는데, 이 덩치의 차를 몰면서 ‘편하다’는 말을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스티어링은 BMW답게 직결감이 살아 있다. 도심에서의 저속 주행은 부드럽고, 속도를 높이면 묵직해지며 안정감을 준다. 차체의 크기와 무게를 의식하기보다는, 잘 다듬어진 대형 세단에 가깝다.
서스펜션 세팅은 도심에서도 부드럽고, 고속에서도 단단하게 잡아준다. 부드럽게 넘어가면서도 통통 튀지 않고, 묵직함이 살아 있다. 무게 중심이 높고 차체가 큰 대형 SUV에서 이 정도 안정감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V8의 매력이 폭발한다. 4.4리터 트윈터보 엔진은 530마력과 76.5kg·m의 토크를 낸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가 4.7초에 불과할 정도다. 이 덩치에서 나올 가속이 아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속도는 무심하게 쌓인다. 어느 순간 계기판은 이미 세 자릿수를 찍고 있다. 그 과정이 너무 매끄러워 체감 속도는 한참 낮다.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대형 SUV라기보다 플래그십 세단에 가깝다. 차체는 단단히 버티고, 노면은 에어서스펜션이 부드럽게 걸러낸다. 코너링도 의외로 정교하다. M 전용 서스펜션과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저가 차체를 확실히 잡아준다.
시속 100km/h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실내는 놀라울 정도로 정숙하다. 풍절음은 거의 들리지 않고, 노면 소음도 에어 서스펜션이 흡수한다. 방음, 방진 모두 플래그십 SUV에 걸맞은 수준이다. 음악을 틀면 콘서트홀 같은 몰입감이 생긴다. 바워스 앤 윌킨스(Bowers & Wilkins) 사운드 시스템은 음악 취향과 무관하게 귀를 만족시킨다. 볼보의 그것처럼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만족감은 어느 정도 있다.
전동화가 대세인 지금, 오히려 이런 ‘클래식 럭셔리 SUV’의 매력은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 마지막 V8은 조용히, 그러나 품격 있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거 같다.
[육기자의 으랏車車] 전동화의 문턱에서 마주한 정통 플래그십의 품격, BMW X7 M60i xDr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