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새롭게 내놓은 준중형 전기 세단 EV4는 첫인상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수직형 테일램프와 날이 선 캐릭터 라인, 각진 전면부가 전기차의 다음 디자인을 암시한다. SUV처럼 각을 살린 실루엣이지만 루프라인에서 길게 이어지는 롱테일형 트렁크 라인은 공기역학적 설계의 결과물이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색함이 잔뜩 묻어난다. 대신, 도로 위 존재감은 기대 이상이다. EV4를 타고 주행하는 동안 시선을 받는 건 오히려 평범한 일이다.
실내는 EV3와 상당 부분을 공유한다. 12.3인치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 5인치 공조 패널이 하나로 이어진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는 시각적 일체감이 뛰어나고, 반응 속도도 빠르다. 센터터널 중앙 콘솔에는 슬라이딩 방식 테이블이 숨겨져 있고, 팔걸이를 들어올리면 2열 탑승객이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로 변신한다. 실용성을 고려한 구성이다.
2열 공간도 준중형급으로는 꽤 넓은 편이다. 성인 남성이 앉아도 레그룸과 헤드룸 모두 여유가 있고, 트렁크 용량도 490리터(VDA 기준)로 넉넉한 수준이다. 다만 후방 시야가 살짝 제한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아쉽다. 디지털 룸미러가 제공되지 않는 점은 향후 개선 여지로 남는다.
시승차는 '어스 롱레인지' 모델로 최고출력은 204마력, 최대토크는 28.9kg·m다. 급가속 상황에서 초기 반응은 민첩하지만, 전기차 특유의 폭발적인 튀어오름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하게 밀어주는 타입이다. 이는 EV4가 추구하는 전반적인 주행 성격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저속에서는 서스펜션이 부드럽게 노면을 흡수하며, 고속 영역에서는 하체가 단단히 버티는 느낌을 준다. 과속방지턱이나 요철을 지날 때의 바운싱도 깔끔하게 정리됐으며, 좌우 롤링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도심형 주행에 최적화된 차’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
정숙성도 인상 깊다. 노면 소음과 풍절음이 철저하게 억제되어 있으며, 시공 중인 구간에서도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 부분은 동급 전기차 대비 확실한 강점으로 작용한다.
공식 인증 주행거리는 533km(롱레인지 17인치 기준)로 표기되며, 실제 시승 환경에서는 복합 6.0km/kWh 수준의 효율을 보여줬다. 고속도로 90%, 시내 10% 비율의 주행 결과 약 412km를 충전 없이 달릴 수 있었으며, 무리한 고출력 주행이 아니라면 600km 이상도 가능한 수준이다. 충전 편의성도 우수한 편이다. 400V 기반 급속충전 시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약 31분이 소요됐으며, 캠핑이나 전력 공급에 유용한 V2L 기능도 지원된다.
EV4는 단지 실속 있는 전기 세단이 아니다. 디자인, 승차감, 정숙성, 그리고 무엇보다 ‘전기차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는 감성’을 중심에 둔 모델이다. 운전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는 추후 출시될 GT 트림에서 해소될 여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EV4는 ‘고급차’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이 정도 감성과 주행 품질을 제공하는 전기차’는 드물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전기차 시장에서 ‘디자인은 낯설지만, 경험은 익숙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방향을 보여주는 EV4는, 도심형 모빌리티의 새로운 기준이 되기에 충분하다.
[육기자의 으랏車車] “낯설지만 빠져든다”… 기아 EV4, 도심형 전기 세단의 새로운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