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셸(Shell)이 후원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 운전자들이 전기차(EV) 구매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19일(현지시각) 외신이 보도했다. 현재 전기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운전자들의 관심도가 크게 하락했으며, 이는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비(非)전기차 운전자 41%만이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는데, 이는 2024년 대비 7%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반면 미국은 3%포인트 하락에 그쳤고, 중국은 오히려 전기차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높은 비용과 부족한 신뢰가 주요 원인
운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차량 가격이다. 유럽 비전기차 운전자의 43%가 차량 가격을 구매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꼽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전기차 가격은 정체된 반면, 중국과 미국 가격은 하락세를 보였다. 셸 부사장 데이비드 번치(David Bunch)는 "전기차 소유에 드는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과 광범위한 경제적 압박이 맞물려 새로운 소비자에게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충전 인프라에 대한 신뢰 부족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셸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 응답자 17%만이 공공 충전이 합리적인 가치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미국 71%와 중국 69%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충전 속도,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숨겨진 수수료나 여러 앱을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운 결제 시스템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스페인에서는 보조금 지연, 고르지 않은 충전 접근성, 그리고 일반 소비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차량 가격 등으로 인해 전기차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전기차 소유자들은 만족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현재 전기차 소유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전 세계 전기차 운전자 91%가 다음 차량으로도 전기차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으며, 주행 거리에 대한 불안감도 줄어들고 충전 네트워크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기차만 소유한 운전자 비율이 미국에서 7%, 유럽에서 6%, 중국에서 17%포인트 증가했다는 점은 전기차가 한 번 구매하면 만족도가 높은 제품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유럽은 지난 12개월 동안 충전 환경이 개선되었다고 답한 운전자가 51%에 불과해, 미국(80%)에 비해 크게 뒤처지는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 BYD는 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엿보고 있다. BYD는 지난 4월 유럽에서 테슬라보다 더 많은 전기차를 판매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저렴한 소형 전기차 '돌핀 서프(Dolphin Surf, 비유럽 시장명 시걸)'를 출시하며 유럽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약 2만5000 달러(약 3400만 원)에 판매되는 이 모델은 유럽 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전기차 중 하나로 꼽힌다. 자동차 리서치 회사인 자토 다이내믹스(Jato Dynamics) 펠리페 무뇨스(Felipe Munoz) 선임 애널리스트는 BYD가 기존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 직원을 고용하고 저가 옵션을 제공하는 등 올바른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전기차 시장의 미래는?
유럽은 야심 찬 기후 목표를 설정하고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시점을 명시했지만, 소비자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전기차 목표를 축소하고 있으며, 정치인들도 녹색 전환 기한에 대해 더 신중해지고 있다. 스페인의 사례는 유럽 전역에 걸친 경고등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이 운전자들을 다시 전기차로 끌어들이려면 단순히 구호와 마감 시간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제조업체는 소비자들이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모델을 제공해야 하며,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효율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충전 인프라 품질과 접근성을 개선하고, 결제 시스템을 통일하며, 가격 책정을 표준화하여 운전자들이 편리하게 전기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셸 설문조사는 새로운 위기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이미 스페인 등 많은 국가에서 인지하고 있던 문제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소비자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 유럽 전기차 시장은 이러한 신뢰가 크게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