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1954년 한 청년이 미국 전용 트럭에서 떼어낸 엔진과 변속기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기차 레일을 용접해 프레임을 제작했고, 나무로 만든 골조 위에 망치로 편 드럼통 철판을 붙여 차체를 꾸몄다. 쌍용자동차의 시작을 알렸던 ‘드럼통 버스’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유명한 일화다. 거의 70년 후 돌아본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서는 쌍용차가 현대차·기아보다 항상 먼저였다.
쌍용차의 초석인 하동환자동차제작소를 비롯해 신진, 동아를 거쳐 대우와 상하이, 그리고 마힌드라까지 늘어놓을 헤리티지는 겹겹이 쌓여 있다. 자동차 왕국이라는 유럽과 미국의 여느 브랜드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쌍용차는 한국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업이다. 하지만 좋은 기억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쌍용차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노사 갈등, 서둘렀던 근·현대화의 폐해 등을 쌍용차의 쇠락 원인으로 분석하는 이들이 많다.
깊은 상흔만 남기고 떠난 먹튀의 상하이차, 코로나19에 무너진 마힌드라 때는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래도 쌍용차는 토종 국산차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Korea Can Do’를 외쳤다. 한국의 역사적인 SUV ‘코란도’ 차명도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한때 오프로드의 문화를 정착시켰던 쌍용차의 도전 정신을 '토레스'가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출시한 토레스는 탁월한 주행성능과 뛰어난 경제성, 동급 대비 넉넉한 공간 효율성에 최첨단 장비들을 겸비한 편의성,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선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특히, 쌍용차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인 ‘Powered by Toughness’를 바탕으로 디자인된 첫 작품이다. 강인하면서 자유로운 삶과 도전적 모험을 즐기는 SUV다움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코란도와 무쏘 때의 정신이 담겨 있는데 열정적으로 어디든 돌파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토레스의 성공은 디자인이 8할을 차지했다. 실제로 한때의 티볼리만큼이나 파격적이고 놀라운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강인한 익스테리어 디자인과 부드럽고 신선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조화를 잘 이뤘다.
실제로 토레스는 지난 2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최하는 ‘2022 굿디자인(GD) 어워드’에서 금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GD는 외관, 기능, 재료,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국가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우수한 상품에 붙는 정부 인증 마크다. 토레스는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정통 SUV의 특징을 살리면서 새로운 생활양식과 트렌드를 고려해 디자인된 외관과 간결한 인터페이스가 돋보였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쌍용차는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나아간다.
기업 통합 이후 쌍용차의 행보가 유독 더 눈에 띈다. 쌍용차 부활의 신호탄이 된 토레스의 전력은 상당하다. 토레스는 지난 9월 월별 판매량으로 본다면 현대차·기아의 동급 경쟁 모델들을 앞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당월 판매량은 4781대, 단일 모델로는 말 그대로 기록적인 수치다. 이뿐만이 아니다. 7월 출시해 지난 10월 기준 누적 계약은 8만 대, 누적 판매량은 1만5833대를 찍었다. 지난 2015년 축배의 잔을 들었던 티볼리의 기록 이후 다시 찾아온 호황이다. 사전 계약은 티볼리를 넘어섰다. 티볼리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수출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쌍용차는 토레스를 앞세워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각)에는 토레스 차명의 기원인 칠레 파타고니아 지역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글로벌 론칭을 알리며 현지 기자단과 시승행사를 진행했다. 칠레, 콜롬비아, 페루,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등 중남미와 중동, 아프리카 주요국 기자단뿐만 아니라 대리점 관계자도 함께 참석해 토레스에 높은 관심을 내비쳤다.
쌍용차는 시승을 마친 기자단으로부터 토레스에 대해 극찬이 쏟아져 나왔다고 전했다. 기자단은 “정통 SUV를 떠올리는 강인한 외관 디자인을 갖췄다”,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첨단 자동차의 세련미를 품고 있다”, “실내 인테리어는 물론 주행성능과 승차감도 만족스럽다”, “글로벌 SUV 시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등 소감을 밝혔다. 쌍용차는 이번 해외 시승행사를 통해 해외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눈치다. 앞으로는 적극적인 글로벌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인지도 제고는 물론 해외시장 공략에 필요한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결심도 다졌다.
단호한 결심은 실적으로도 드러난다. 쌍용차의 지난달 수출 실적은 5306대로 전월 3647대 대비 46.3%가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55%라는 기록적인 증가세다. 위기 상황에 직면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그저 단기적 기저 현상이라고도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회복력을 보였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글로벌 판매 확대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쌍용차는 지난 21일 중부 유럽 대리점 관계자들도 초청했다. 기업회생절차 종결 후 주요 수출국 대리점을 불러들인 것은 처음이다. 판매국 네트워크 관리는 수출 실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상품성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타깃에 도달하는 것이 마케팅의 최대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초청은 글로벌 시장별 현지 마케팅 및 브랜드 인지도 전략 강화, 그리고 해외 네트워크와의 긴밀한 협력과 파트너십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판매를 늘려 나가겠다는 취지를 덧붙였다. 이날 독일과 벨기에 대리점 및 산하 딜러 관계자 60여 명의 중부 유럽 우수 딜러들은 평택공장 생산라인과 디자인 센터를 직접 둘러봤고 회사의 현황과 미래 전략 모델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다.
대부분 업계 시각은 앞으로 쌍용차의 성패가 수출에 달려 있다고 판단한다. 내수의 한계를 딛고 성공한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수출 기업으로서 성공한 쌍용차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깐깐한 '차 고르기'로 유명한 국내 고객들에게 우선 인정받았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전자는 이미 어느 정도 달성했으니 앞으로는 후자가 과제로 남았다.
20여 년의 방황 끝에 드디어 쌍용차가 토종 브랜드로 돌아왔다. 지난 11일 쌍용차는 KG그룹과의 M&A를 통해 유입된 인수자금으로 회생채무 변제를 완료했다. 지난해 4월 회생절차 개시 후 1년6개월 만의 일이었다. 해외 자본에 잠식돼 여러 차례 난관을 겪었지만, 마침내 KG그룹의 일원이 되면서 온전히 우리 품에 다시 안겼다. 2022년 한 해를 되돌아볼 때 10대 뉴스에 들 만한 일이다. 쌍용차는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전동차 시대를 위한 준비도 철저하게 해나가고 있다. 토레스를 기반으로 한 U100이라는 전기차 모델이 내년 하반기에는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라인업도 늘려간다. 토레스를 기반으로 한 픽업트럭의 예상도도 이미 즐비하게 나오고 있다. 타임리스 디자인을 추구하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들처럼 토레스의 디자인큐는 한동안 쌍용차를 부활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이미 시장 반응도 뜨겁다. 토레스는 쌍용차의 브랜드 라인업을 이끌며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