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토요타 천하'로 끝난 랠리 재팬 2025...“극한의 아스팔트에서 쓰인 대서사시”
이미지 확대보기세바스티앙 오지에 선수가 타고 있는 TGR의 GR 야리스가 코너를 돌고 있다. 사진=토요타
2025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시즌의 13번째 무대인 ‘포럼8 랠리 재팬’이 지난 9일, 아이치현과 기후현의 좁고 구불구불한 아스팔트 코스를 따라 3일간의 뜨거운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토요타의 홈 랠리로 치러진 이번 대회는 TGR-WRT(Toyota GAZOO Racing World Rally Team)의 세바스티앙 오지에(Sébastien Ogier)가 극한의 조건 속에서 노련미를 과시하며 종합 우승을 차지, 팀의 포디엄 석권을 이끌었다.
오지에는 엘핀 에반스(Elfyn Evans)가 2위, 랠리1 데뷔 후 첫 포디엄을 달성한 사미 파야리(Sami Pajari, TGR-WRT2 소속)가 3위를 차지하며, 토요타가 1위부터 3위를 독식하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완벽한 승리의 이면에는 타이틀 경쟁팀인 현대의 처절한 불운과 홈 히어로 카츠타 타카모토의 눈물 젖은 투혼이 있었다는 것도 이번 경기 관람의 핵심 포인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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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왼쪽부터) 엘핀 에반스 (Elfyn Evans), 스콧 마틴 (Scott Martin) 크루, 세바스티앙 오지에 (Sébastien Ogier), 뱅상 랑데 (Vincent Landais) 크루 (중앙에서 가장 큰 트로피를 들고 있는 1위), 칼레 로반페라 (Kalle Rovanperä), 요네 할투넨 (Jonne Halttunen) 크루 사진=WRC
Day-by-Day 드라마: 리타이어와 복귀, 그리고 챔피언의 등장
이번 랠리는 경기 초반부터 챔피언십 경쟁 구도의 역동성과 극한의 코스 난이도를 여실히 보여줬다. 레이스 초반, 개막 첫날(Day 1)인 지난 6일 쉐이크다운과 SS1에서 일본 드라이버 카츠타 타카모토(Takamoto Katsuta)가 종합 2위를 기록하며 팬들의 기대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7일 Day 2까지 그는 오지에에 근소하게 뒤진 2위를 유지하며, 8회 챔피언 오지에, 팀 동료 에반스와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쳤다.
같은 날, M-SPORT 포드의 조쉬 맥컬린이 SS.3에서 충돌 사고로 리타이어하며 레이스 초반부터 코스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지에는 노련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Day 2를 종합 선두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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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는 타이틀 경쟁의 향방을 가른 날이었다. 3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카츠타는 SS.11 '카사기야마 2'의 특수 설계 구간에서 배리어에 충돌했다. 이 사고로 차량의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이 파손됐고, 그는 무거운 조향 상태로 약 4분이나 뒤처지며 완주했다. 결국 최대 허용 지연 시간을 초과하여 일일 리타이어(Rally 2 재참가 가능)로 처리됐다.
실의에 빠진 카츠타는 도요타 자동차 회장인 모리조(도요다 아키오) 회장에게 격려를 받았다. 모리조 회장은 "최고의 무대는 지금이 아니다. '세계에서 싸우는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온다"며 그의 투혼을 치하했고, 이는 카츠타가 다음 날 복귀를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경기의 마지막 날인 Day 4는 폭우 속에서 진행됐다. 현대 쉘 모비스 WRT 팀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날이었다. 티에리 누빌은 SS.15 시작 전, 빗속에서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는 전기 계통 문제로 주행 불가 판정을 받고 리타이어했다. 아드리안 포모어는 SS.16 주행 중 코스 이탈 사고로 코 드라이버 측 도어가 완전히 파손되며 리타이어했다. 3위를 달리던 상황이었기에 이 사고는 치명적이었다.
타이틀 선두인 오트 타낙 역시 SS.16에서 우측 타이어 펑처(타이어가 손상되어 바람이 빠지는 현상)를 겪었으나 4위로 완주, 최소한의 포인트를 지켰다.
이러한 현대팀의 잇따른 이탈은 랠리1 데뷔 후 첫 포디엄을 노리던 사미 파야리에게 기회가 됐고, 결국 최종 순위 3위를 차지하며 토요타의 1-2-3 포디엄 석권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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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 재팬은 일반적인 서킷 레이스와 달리 아이치현과 기후현의 공도를 활용하는 독특한 구성이다. 현장의 열기를 200% 즐기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살펴봐야 한다.
우선, 도심형 '슈퍼 스페셜 스테이지(SSS)'를 사수할 필요가 있다. 접근성과 관람 편의성이 가장 뛰어난 곳은 도심에 마련된 SSS다. 이번 대회에서도 오카자키 중앙 종합 공원에서 열린 SSS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관중을 모았다. 카츠타 선수가 이 스테이지에서 연속 톱 타임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물했듯이, 이곳은 드라이버들의 짜릿한 도넛 턴과 근접 주행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명소다.
현장에서 '모노즈쿠리' 정신을 경험하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다. 토요타 스타디움 인근의 서비스 파크에서는 드라이버와 미캐닉들의 긴박한 차량 정비 과정을 볼 수 있다. 15분간의 타이어 피팅 존 정비 등, 극한의 상황에서 완벽한 품질을 추구하는 일본 제조업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를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은 랠리 관람의 또 다른 재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이틀 레이스의 역동성을 느끼는 것도 관람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이번 랠리에서 오지에, 에반스, 타낙 등 챔피언 후보들이 1점 차이를 다투며 목숨 건 레이스를 펼치는 모습은 WRC만의 매력이다. 단순한 순위 싸움을 넘어, 일요일에만 별도 포인트를 주는 '슈퍼 선데이'와 마지막 '파워 스테이지'까지 모든 순간이 포인트 획득을 위한 치열한 전투임을 인지하고 관람한다면 랠리가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COVER STORY] '토요타 천하'로 끝난 랠리 재팬 2025...“극한의 아스팔트에서 쓰인 대서사시”
이번 랠리 재팬은 토요타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지만, 경쟁팀 현대 쉘 모비스 WRT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악몽을 안겨줬고, 이는 챔피언십 경쟁의 구도를 최종전까지 끌고 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선두권을 쫓던 세바스티앙 오지에는 이번 랠리에서 파워 스테이지를 포함한 모든 보너스 포인트를 쓸어 담으며 단일 토너먼트 최대 포인트(35점)를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챔피언십 경쟁은 엘핀 에반스(2위), 오트 타낙(4위), 그리고 오지에(우승)가 획득한 포인트에 따라 선두권 드라이버 간의 점수 차가 극도로 좁혀졌다.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타낙, 에반스, 오지에가 모두 우승을 노리는 '세기의 3파전' 구도가 완성된 것이다.
이번 랠리 재팬이 남긴 뜨거운 불씨는 곧바로 시즌 최종전 '사우디아라비아 랠리'로 이어진다.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펼쳐질 이 최종전은 아시아의 아스팔트를 떠나 중동의 거친 그라벨(자갈) 노면에서 치러질 예정이다.